한국전쟁
한국전쟁은 냉전이라는 더 큰 갈등에서 불거진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었다. 냉전은 전후 두 강대국인 미합중국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구 소련)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대립이었다. 대한민국(남한)은 미국의 지원을 받았고, 미국은 자신의 편에 서도록 유엔을 설득하였다. 호주는 남한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병한 유엔 21개국 중 하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은 중국과 구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우세한 북한군이 남한 전체를 정복하기 직전 유엔군이 개입하였다. 한국에 도착한 최초 호주군으로는 호주 공군 제77 비행대대와 호주 해군의 HMAS 숄헤이븐 호와 HMAS 바탄 호가 있다. 유엔군은 반격을 통해 북한군을 물리치고 북한 영토까지 추격해갔다. 유엔군이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에 다다르자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제 수적 열세에 처한 유엔군은 남쪽으로 밀려 후퇴하였고, 남한의 수도인 서울은 다시 한 번 공산군에게 함락되었다.
1951년 초, 유엔군은 전쟁 전 남한과 북한을 가르던 38도 선 바로 위의 전선을 확보하면서 다시 한 번 진군하였다. 전쟁의 바로 이 단계에서 호주군 제3대대의 대원 94명이 가평 전투에서 전사, 부상 또는 생포되었다.
서울의 주인이 4번이나 바뀌었던 기동전의 1년이 지나자, 전선은 고정되었고 평화 협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마지막 2년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다만 그 참호들이 춥고 황량한 한국의 산악지대에 있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무인지대에서 정찰과 매복 기습이 계속되었고 양 측은 평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때때로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은 성립되었으나 공식적인 평화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은 엄밀히 말하면 여전히 전시 상태에 있으며, 전쟁이 중지된 시점의 전선인 휴전선은 양 측의 군대에 의해 엄중히 감시되고 있다.
전쟁 동안, 50만 명 이상의 병사들과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사망하였다. 한국의 산업의 절반, 그리고 모든 가옥의 3분의 1이 파괴되었다.
약 17,000명의 호주 병사들이 한국전쟁에서 싸웠으며, 이 중 340명이 전사하였다.


